가벼움에 대해.. (feat. 작가 공지영과 김영하) 하루


신림역 할리스에서


1. 

"내가 뭐라고 가볍네, 마네를 재단했었는지 모르겠어."
이십대 초반 당시 사귀고 있던 친구와 공지영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던 중에 그 친구가 했던 이야기.
이야기인 즉슨 한창 반항기 넘쳤던 고등학생 시절.
문학소녀이기도 했던 그 친구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"공지영의 글은 너무나 가벼워."라는 것.
공지영 작가야 문단에 등장한 이후로 줄곧 잘나가던 작가였으니 
그녀 주변에 '가벼움'을 탐닉하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 즐비했었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. 
매일을 세상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치고 싶던 그 시절 그 모습들을 보며 같잖은 양 혀를 찼었다는 이야기.
하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다시 집어든 공지영 작가의 책. 
그 속에서 십대 시절 받았던 감흥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느꼈다는 이야기.
뭐 그런 이야기. 
이 이야기가 거의 십년 가까이 지난 오늘 다시 생각난 건 한 작가 덕분이다.


2.

이것도 몇 년인가 전의 이야기.
지금도 남아있긴 하지만 소위 '뇌섹남'이라고 불리는 부류가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시절.
당시 여자친구가 추천해준 작가가 소설가 K씨.
그 친구의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이미 흐릿해졌지만 어쨌든 엄청난 찬사의 언어들로 가득찼던 추천사.
덕분에 난 서점에서 그 작가의 책을 집어들었고, 엄청난 실망을 했었다.
내용, 문체, 심지어 작가의 생김새까지..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.
(그 친구의 지나친 찬사 때문에 질투심에 눈이 멀어 그랬던 것은 아니리라.. 아닐 것이리라..)
뭐 어쨌든. 
인생 삼 세번이라고,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몇 작품 도전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. 
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, 내 손에 쥐어 들게 됐던 게 바로! 
내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김영하 작가의 작품.


3.

작품의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다.
처참했다.
뇌가 섹시하고, 잘생긴 작가들에 대한 거부감이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건 아닐까? 의심했을 정도로..
하지만 단 한 가지 선명하게 남아있는 건 '가볍다.'라는 느낌.
돌이켜보면 학부 말년에 나름 엄청난 양에 인문/사회학 서적에 빠져있을 때여서 그 영향도 없진 않았으리라 예상된다.

서론이 좀 길었지만 어쨌든 오늘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'가벼움'에 관한 것이기도 하니까..


4.

요즘 머리가 많이 복잡했다. 
덕분에 서점을 찾으면 찾게되는 책이 산듯한 에세이류로 분류되는 책들.
그 와중에 집어들게 된 책이 바로 김영하 작가의 <보다> 이다.
이번에도 시작은 '가벼움'이었다. 
물론 가장 큰 영향은 요즘 즐겨보는 tvN의 <알쓸신잡>을 통해 김영하 작가에 대한 흥미가 돋아졌던 것이 가장 크긴 하지만..
뭐 어쨌든. 
산듯함의 갈망에서 시작된 독서가 감탄과 탄성으로 마무리 됐다. 

이미 방송을 통해 사고의 시각이 트여있고, 언변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
정말 오래간만에 경쾌하면서도 깊이까지 있는 에세이 한 권을 읽을 수 있었다.
한 구절, 한 구절이 머리 뿐 아니라 가슴에까지 빈번히 꽂혀 
사진도 찍고, 노트북에 받아적기를 반복해가며 책을 읽었다.

분명 얼마 전 <알쓸신잡> 방송에서 만인에게 좋은 책은 있을 수 없다.
시공간의 조건과 상황의 변화에 의해서 한 권의 책의 좋고 나쁨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는데..
이것을 몸소 실감했달까? 

한 권의 책, 한 편의 영화, 한 잔의 술 이렇게 값싸게 즐길 수 있는 것들로 오늘처럼 하루가 충만해지면 
그때 몰려드는 행복감은 어디 비할데가 많이 없다.
또 어떤 시공간의 조건과 상황 변화로 내가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비토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
오늘 하루, 역시나 심난했던 하루 말미에 이렇게 행복감을 선물해준 김영하 작가에게 감사하며..
책의 한 구절 발췌하며 마무리의 말 갈음한다. 


5. 

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'진심'을 담아 전달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. 
호메로스는 이미 이천팔백여 년 전에 그런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. 
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. 
진심 역시 '잘 설계된 우회로'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. 
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,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. 

김영하, <보다>, 115p~116p